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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스토리

우리 동네에 문화재가 있다? 과거와 현재의 역사가 공존하는 그 곳, 아산 신창현 역사 탐방기

 


여러분께서는 조선시대 신창현을 알고 계시나요? 제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잘 모르겠어요”, “신창역은 알고 있어요” 등의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과거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하나의 군현 역할을 했던 신창현은 그만큼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현재는 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이라 불리고 있는데요. 오늘, 그 무구한 역사를 그대로 이어온 신창면의 문화재 탐방기를 생생하게 전해드리려고 합니다.

 

 

■ 문화재 탐방? 어렵지 않아요~ 거리 곳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문화재들


 

아산 신창현의 많은 문화재 중 가장 먼저 탐방하게 된 문화재는 ‘신창척화비’ 였습니다. 신창척화비는 신창초등학교로 들어 가기 전 도로 옆쪽에 위치해 있는데요.

신창척화비를 보자 중고등학교 시절 역사를 공부하면서 배웠던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이 생각이 났습니다. 신미양요와 병인양요 이후 흥선대원군의 명령으로 전국에 세워졌던 척화비가 바로 아산시 신창면에도 있었습니다.

 


척화비의 내용은 ‘양이침범비전즉화주화매국 계아만년자손 병인작 신미립’, 즉 ‘서양의 오랑캐가 침범하는데 싸우지 않는 것은 화친하는 것이다. 나라를 팔아먹는 것이다. 병인년에 만들어서 신미년에 세운다.’ 라는 역사적 상황을 담고 있습니다.

이렇게 척화비가 세워질 정도면 당시 신창현에 많은 인구가 밀집해 있었을 것 같은데요. 신창현이 하나의 도시 군현의 역할이었기 때문에 척화비가 세워졌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보았습니다.
역사를 공부하고 있는 초중고 학생들이 와서 탐방을 한다면 역사를 조금 더 수월하게 이해하고, 또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렇듯 신창현의 역사문화재를 탐방하면서 가장 신기했던 점은 문화재들이 신창초등학교 등교 길과 학교 안에 위치해 있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등교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상가와 원룸 사이에 위치해 있는 홍살문을 발견 할 수 있는데요.

계속 해서 올라가면 주차장 사이의 여러 개의 비석들이 보입니다. 처음에는 이것도 척화비인가 헷갈리기도 는데요. 이 비석들은 현시대 시장의 역할을 했던 신창현감들의 선정비였습니다.

선정비는 현감들이 백성들을 잘 다스렸다는 것을 후대의 후손들에게 알리기 위해 세워지는 비석인데요. 그 중 유독 눈에 띄는 비석이 있었습니다.

 

 

제 눈을 사로잡았던 큰 비석은 ‘김육비’라고 하는 비석인데요. 신창현감은 아니었지만 영의정의 역할로 대동법을 주장하고 시행하게 된 것을 기리기 위해서 세운 비라고 하네요. 비록 주차장 사이에 보존되어있는 문화재였지만 깔끔하게 잘 정돈 되어 있었고 설명도 이해하기 쉬웠습니다.



■ 과거와 현재의 역사가 함께 살아 숨쉬는 곳을 발견하다!

 

 

그 다음으로 신창향교를 방문하기 위해서 길을 따라 올라갔는데요. 이 곳에서는 문화재와 초등학교가 함께 공존하는 신기한 광경을 볼 수 있었습니다.

바로 신창향교는 신창초등학교 안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신창향교와 아래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뛰어 노는 모습을 동시에 볼 수 있다는 점이 재미있었는데요. 이처럼 특이한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한 번 탐방을 했던 사람들이라면 이 풍경을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향교는 과거 조선시대 교육의 역할을 한 곳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의 교육기관인 신창향교와 현재의 교육기관인 신창초등학교가 함께 있는 의미가 더욱 큽니다.

신창초등학교는 작은 학교지만 1910년에 설립되어 지금까지 100년이 넘는 전통을 가지고 있는 학교인데요. 과거의 전통이 녹아있는 문화재 향교와 100년의 역사를 가진 초등학교가 함께 한다는 사실이 무척 감명 깊었습니다.

신창향교는 조선 숙종시대에 지어졌다고 전해지지만 정확한 기록은 없는데요. 그 대신 1872년 도고산에 있었던 진주사를 옮겨서 향교로 만들어 졌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신창초등학교와 신창향교의 뒤를 바라보면 산을 하나 볼 수 있는데요. 이 산의 이름은 바로 ‘학성산’입니다. 신창향교에서 학성산 정상 까지는 1km, 인취사 까지는 0.8km정도 걸린다고 하네요. 자연과 함께 어우러진 역사의 모습이 참 아름다웠습니다.

 


신창향교의 내부 모습을 한번 들여다볼까요? 지어진 지 꽤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신창향교의 보존상태는 매우 양호했습니다.

이 곳에서는 ‘석전대제 행사’를 연다고 하는데요. 석전대제 행사는 전통문화를 잘 보존하자는 의미와 옛 성현의 학덕을 기리자는 의미로 행해지는 행사입니다. 해마다 음력 2월과 8월에 이루어지고 있다고 하니, 학생들이 참여한다면 새로운 배움의 경험이 쌓일 것 같습니다.

 

 

신창현은 현재 사람들의 기억 속에 그저 ‘순천향대학교가 있는 마을’이나 ‘1호선 종점이 있는 신창역’ 정도로만 기억이 되고 있을 텐데요. 실제 신창현에는 그보다 더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습니다.

이 곳에서는 과거의 학교의 역할을 했던 향교와 현재의 학교의 역할을 하는 초등학교가 상생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신창척화비와 선정비와 같이 과거의 도시의 역할을 했던 신창현의 역사문화재가 숨쉬고 있기 때문이죠.


이번 여름방학 동안, 가족들과 함께 신창현을 탐방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학생들은 역사 공부를 할 수 있을 것이고, 가족들과는 좋은 추억을 쌓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